최병오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

형지글로벌패션복합센터 1층 로비에는 내 인생의 멘토 두 분의 흉상이 있다. 그들의 삶과 정신을 존경하며 이어가고, 또 복잡한 질문이 생길 때 길을 찾기 위해서다. 

한 분은 고(故) 다토 탄 회장님이다. 1947년 22세에 크로커다일인터내셔널을 싱가포르에 창업하고, 품질과 가치로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끈기로 아시아 전역에 시장을 확대했다. 

2015년부터 연로한 나이임에도 명예회장으로 회사를 돌보는 한편, 패션 사업을 넘어 아시아의 교육·건강·재난재해를 지원하는 재단을 설립해 사회공헌 활동에도 주력한 명망 높은 기업가다.

탄 회장님과의 첫 만남은 1996년. 당시 남성복으로 전개되던 브랜드였지만 한국에 여성복으로 최초 론칭하기 위해 수소문 끝에 뵙게 되었다. 설득 끝에 라이선스를 획득한 후 여성 캐주얼로 길을 열어 가자, 끈끈한 연을 이어오면서 한없는 믿음과 조언을 보내주셨다. 그는 항시 "생각은 창의적으로, 일은 근면하게, 곤경에는 긍정적으로, 성공에는 겸허하게 임한다"는 경영철학을 전해주셨다. 누구나 아는 내용이지만 경영과 인생의 모든 해답이 담겨 있는 게 아닌가 한다. 평소 이를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임직원들에게도 귀한 철학을 설파했다.

그는 2024년 100세에 유명을 달리하셨다. 싱가포르 장례식장에는 여러 공헌 활동으로 대학이나 사회단체의 조문 행렬이 줄을 이었다. 비통함과 함께 그 위업을 이어받고 평생 실천하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따르겠다는 추도사를 했다.

다른 한 분은 에스콰이아의 창업자 고 이인표 회장님이다. 1961년 39세에 '가볍고 튼튼하고 모양 좋고 편안한 최고의 구두를 만드는 게 삶의 소명이자 의미'라는 굳은 신념으로 끊임없이 노력해 우리나라 구두 시장을 개척했다.

1977년 이탈리아 국제피혁제품경진대회에서 오스카상을 수상해 세계적 구두 기술을 인정받았으며,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에게 구두를 납품해 '대통령의 구두'라는 명성까지 얻은 분이다. 특히 그는 '도서관 할아버지'로 존경받으셨는데, "배움만이 우리 민족을 강하게 한다"며 대학 발전기금은 물론 도서관 사업을 실천했다.

서울대 한 교수가 집 차고를 개조해 달동네에 사는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을 꾸민 것에 감동받아 1990년 어린이날 서울 상계동에 첫 어린이도서관을 열었다. 이후 국내와 해외에 이르기까지 23개 어린이도서관을 설립하고 운영했는데,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어린이들을 위한 이 일이 일생의 가장 큰 보람이라 했다.

이분들은 불모지에서 새 시장을 열고, 성공한 후에는 사회 기여에 앞장섰다. 멘토들을 떠올리며 그 삶과 철학을 거울 삼아 살아가는 흔들림 없는 확신을 얻고 있다.

"옷 걱정 없이 믿고 입는 브랜드를 만들겠다." 패션으로 행복한 세상을 열어 가겠다는 나의 초심이다. 우리 옷이 고객의 행복으로, 그 행복이 가정과 전 사회로 확산된다는 믿음을 줄곧 가져왔다.

무엇보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이 사회를 위해 사업에 대한 열정보다 더 뜨거운 나눔의 열정을 펼치는 진정한 명품 인생을 다짐해 본다.

출처: 매일경제(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