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협 활동
국내 유일의 업종별 경제단체 공동협의기구
국내 유일의 업종별 경제단체 공동협의기구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총괄전무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법정 근로시간 한도를 단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노동계와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주 4일제, 주 4.5일제로 표현하지만, 결국 본질은 주 40시간인 법정 근로시간 상한을 주 32시간이나 36시간으로 줄이자는 것이다. 국민의힘도 법정 근로시간 단축 없이 주 4.5일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자원이 부족하고 인적 자본이 경제성장의 밑거름이던 과거, 우리 근로자들은 많은 시간 일했고, 우리나라는 장시간 근로 국가로 오랫동안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면서 근로시간은 빠르게 감소했고, 20여 년 전 700시간에 육박하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근로시간 격차는 150여 시간으로 좁혀졌다.
우리나라가 파트타임 근로자 비율이 낮고 근로시간이 긴 제조업 비율이 높은 점 등을 고려하면 이제는 OECD 국가보다 과도한 장시간 근로를 하고 있다는 근거가 희박해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장시간 근로 국가라는 틀에 갇혀 있고, 주 4~4.5일제 주장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근로시간 관련 우리 제도는 이미 국제 표준에 뒤처지지 않는다. OECD 34국 중 주 40시간 미만으로 법정 근로시간을 제한한 나라는 3국에 불과하다. 휴가·휴일 제도 역시 선진국보다 못하지 않고, 생애 근로시간을 줄여 일과 생활의 균형을 높이는 산전·후 휴가, 육아휴직 제도 역시 세계 최상위권 수준이다.
이미 OECD 평균인 우리 장시간 근로자 비율에서 알 수 있듯, 일부에서 발생하는 장시간 근로는 법 준수 문제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진국들보다 현저히 낮은 생산성과 경직적인 근로시간제, 그리고 1인당 국민소득도 OECD 하위권인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부분이 가지 않는 주 4~4.5일제 의무화라는 길을 먼저 가야 할까?
문제는 모든 규제가 그렇듯 일률적 의무화에 있다. 주 4~4.5일제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여건이 되는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이고, 주 4~4.5일제를 시행하는 것을 누가 뭐라 하겠나.
사실 근로시간을 더 빠르게 줄이려면 장시간 근로를 유발하고 노동시장 경쟁력을 저해하는 고질적 과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해고가 거의 불가능한 경직적 노동시장은 기업들이 채용보다는 기존 근로자의 초과 근로를 선호하게 하고 있다. 직무 가치, 성과보다는 연공과 근로시간에 따른 임금 결정이 보편화된 구조도 근로시간 단축을 어렵게 한다.
OECD 평균의 70%에도 미치지 못하는 노동생산성도 성장을 제약하고 근로시간을 더 줄이지 못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해 왔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구 구조 변화와 기술 발전에 따른 급격한 패러다임 변화를 낡은 근로시간 법제가 따라가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부터 시급히 해소해야 한다. 일하는 방식이 다양해지고, 획일적 근로시간 규제가 한계를 보이고 있음에도 언제까지 이런 방식으로 근로시간을 관리할 수는 없다. 이제는 개별 노사가 자율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근로시간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유연화하는 데 근로시간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출처: 조선일보(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