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협 활동
국내 유일의 업종별 경제단체 공동협의기구
국내 유일의 업종별 경제단체 공동협의기구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총괄전무
산업안전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은 단시일 내에 이뤄지기 힘들다. 사업주의 안전경영 리더십을 기반으로 사업장 내 모든 계층의 참여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안전한 조직문화 조성, 반복적인 프로세스를 통한 개선 등 중장기적인 활동이 지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 선진사례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영국 산업안전보건청을 방문했을 때 “기업 내 안전경영시스템이 정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정부와 기업이 장기적 관점에서 제도를 운용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수석감독관의 말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산업현장의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 만들어졌고, 예정대로라면 올해 1월 27일부터는 근로자 50인(건설업은 공사비 50억 원) 미만 사업장도 해당 법률이 적용된다. 새로운 법과 제도가 현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중처법이 요구하는 안전관리시스템을 사업 전체에 도입하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영세 소규모 사업장은 재정이 열악해 안전투자가 어렵고, 전문인력도 부재해 중처법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지난해 12월 경총이 1053개 소규모 기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 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 중 94%가 현재도 법 준수 이행을 준비 중이며, 이 중 87%는 남은 기간 내에 의무 준수 완료가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정부 통계에 따르면 83만 개에 달하는 50인 미만 기업 중 지난 2년간 중처법의 핵심의무인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 지원을 받은 곳은 전체 사업장의 2.2%인 1만8566개소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한 현재까지 중처법 위반으로 기소되거나 처벌을 받은 곳은 대부분 중소업체였다.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법이 본격 적용되면 대부분의 기업은 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생산, 영업, 안전업무까지 1인 다역을 하며 기업을 경영하는 중소기업 대표가 실형을 받을 경우, 회사의 존폐와 근로자의 실직 등 많은 피해가 우려된다.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을 확보하자는 목적과 취지에 반대할 기업은 없다. 기본적인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주에 대해서는 중처법이 아니더라도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중소기업 안전관리를 위한 충분한 지원 없이 맹목적인 법률적용과 강력한 처벌만 강조하는 것은 재해예방 측면에서 효과도 없고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지난해 12월 27일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지원종합대책을 마련하였다. 아울러 경제계도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유예기간 2년 연장 후에는 추가 유예를 더 이상 요구하지 않을 것과 정부대책이 실효성 있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야당이 요구한 추가 유예 조건을 사실상 모두 이행한 것이다. 중처법의 확대 시행까지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부의 지원대책이 보완되어야 한다면 일단 법부터 개정한 후 논의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서둘러 일을 그르치는 우를 범할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의 안전역량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려 안전한 일터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혜안과 결단이 필요한 때다.
출처 : 문화일보(1.16)